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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교육학

기독교교육학개론 - 기독교교육학 기본이해(2)

by 곽까운낭만 2023. 6. 26.

2) 인간행동의 계획적 변화
인류의 역사는 교육의 역사다. 우리가 역사를 회고해 보면 어떤 민족이나 국가도 흥망성쇠의 기복을 그려왔다. 기성세대가 성장세대를 잘 교육하였을 때에 그 민족과 국가는 홍성의 상향곡선을 그렸으며, 잘못 교육하였을 때에 쇠망의 하향곡선을 그렸다. 그래서 슐라이에르마허는 교육과 정치가 가장 밀접하게 상호작용한다고 보았으며, 교육학을 정치와 병렬하고 있는, 윤리학과 연관되어 있으며 윤리학으로부터 연역되어 나온 응용과학으로 파악하였다. 교육은 기성세대가 성장세대에게 가하는 모든 사회적 작용이다.

 

교육은 사회적 현상이기 때문에, 물리적 현상처럼 객관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에 따라서 간주관적으로 이루어진다. 교육은 민족에 따라서 다양하게 이루어져 왔으며, 같은 민족이라고 하더라도 시대에 따라서 상이하게 전개되어 왔다. 교육은 사회문화적으로 다양하게 이해되고 상이하게 실천되는 현상이다.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민족의 수만큼, 언어의 수만큼 이 세상에는 다양한 교육의 이해가 있고, 그만큼 다양한 교육의 실천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교육의 다양성 안에서 우리는 교육의 일원성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교육의 이해에 대한 전형적 모델을 세 가지 유형으로 크게 정리할 수 있다. 교육의 전형적 이해모델 세 가지를 먼저 살펴보자. 그것은 교육에 대한 경험적 이해와 수공업적 모델, 교육에 대한 역사적 이해와 유기체적 모델, 교육에 대한 관념적 이해와 종교적 모델이다.

교육에 대한 경험적 이해는 인간을 하나의 백지(tabula rasa)로 본다. 갓 태어난 인간, 어린 인간은 그 자체로는 아직 아무것도 아닌, 다만 가능성만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다. 마치 화가가 백지 위에 그림을 그리는 대로 백지가 그림으로 되어가듯이, 어린 인간은 외부에서 가해지는 경험적 자극에 의하여 일정한 행동을 훈련받으며, 일정한 의식구조를 갖게 되고, 일정한 의식주 문화를 내면화해 간다. 어린 인간은 교육하는 사람이 의도하는 대로 일정한 인생관과 국가관을 갖게 되며, 삶의 목적과 일상적 생활의 형식에서 시작하여 죽음에 대한 태도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만들어져 간다. 이는 마치 콩을 콩나물로 만들기 위하여 특수한 통 속에 넣고 물만 주는 것과 같다. 콩은 원자재이며, 콩나물은 교육목적이고, 통은 학교 같은 교육환경이며, 물 주기는 교육내용이다. 콩은 원래 대지에 뿌리를 박고 성장하도록 되어 있는데, 콩을 대지에 심지 않고 통 속에 넣어서 햇볕을 차단하고 물만을 주되, 성장과정에 따라서 일정한 간격으로 정확하게 주면, 통 안에 있는 모든 콩은 먹기 좋은 콩나물이 된다. 문제는 과학적 생산방법의 개발과 정확한 응용이다.

이렇게 성장세대를 기성세대가 미리 정해놓은 교육이념과 목적과 목표에 따라서 교육하는 것을 우리는 만드는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만드는 교육에서 교육하는 자는 교육받는 자를, 마치 생산공정에 투입되는 자재처럼, 일정한 인간으로 만들어내기 위하여 투입하는 자원으로 본다. 그래서 만드는 교육에서는 '인간자원'으로 교육과정에 투입되는 학생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고, 목적에 따라서 알맞은 학생을 선별하는 인간자원의 분석기술과 평가방법이 중요하다. 그래서 만드는 교육에서는 재료공학에 속하는 어린이의 성장발달에 관한 이론과 목적에 따라 적절한 재료를 분석해 내고 투입하는 각종 검사와 평가의 방법이 강조된다. 교육의 이념과 목적은 기성세대와 교육하는 자에 의하여 계획되고 제시되며, 이에 따라서 적절한 학제와 교재가 개발된다. 여기서 교육의 개념에 관한 두 번째 정의가 제시된다. 교육은 인간 행동의 계획적인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지식과 기술이다."

교육은 여기서 국가와 사회의 보존과 발전을 위한 인간자원을 개발하는 활동이다. 교육학은 국가의 교육세력이 제시한 교육의 이념과 목적에 따라서 인간을 일정한 인간으로 만들어내는 인간공학으로 드러난다. 교육의 이론과 방법이 과학적으로 완벽하면 할수록 인간은 계획한 대로 철저하게 그렇게 만들어질 수 있다. 그래서 만드는 교육의 관점에서 보면, 교육은 철저한 의미에 있어서 만능이다. 이러한 수공업적 교육관에서 보면 교육은 자연인으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시민으로서의 인간을 양성하는 이론이요 실천이다. 따라서 교육은 국가중심적 활동이며, 개인의 자아실현의 관심은 국가와 사회에 유용한 인간을 양성하는, 소위 '인간자원 개발'의 테두리 안에서만 수용될 수 있을 뿐이다.

3) 내적 성장질서에 따른 조화로운 성장

만드는 교육과 나란히 교육의 역사에서 우리는 '기르는 교육'의 개념을 접하게 된다. 만드는 교육은 교육에 대한 경험분석적이고 기계공학적인 접근이다. 그래서 교육을 지배관심과 응용관심으로 수용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교육은, 만드는 개념으로 파악하면, 어린 인간을 어른의 관심에 따라 일정한 가치체계와 행동목록 안으로 훈련해들이고, 일정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게 하여, 국가와 사회의 보존과 발전을 위하여 필요한 인력으로 양성하여 적재적소에 투입하는, 국가관리를 위한 인적자원의 보존과 개발 및 활용을 과학적으로 모색하는 일종의 인간공학이다."

기르는 교육은 이와 대조적으로 교육에 대한 정신과학적이고 해석학적인 접근이다. 기르는 교육은 인간을 생명을 가진 유기체로 본다. 유기체로서의 인간은 그 자체의 고유한 내적 성장질서를 지니고 있는 자목적적 존재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엔델레히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모든 생명체는 자체의 고유한 '내적 성장질서' (Entelechie)를갖고 있다. 그래서 코스모스 씨를 심으면 코스모스가 피어나지 민들레가 피어나지 않는다. 식물에게는 자아보존과 종족보존의 엔델레히가 있다. 동물에게는 식물의 엔텔레히에다가 감각활동과 본능의 엔텔레히가 있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식물과 동물의 엔텔레히에다가 사유능력인 이성의 엔텔레히가 있다. 그래서 인간은 본성과 습관과 통찰을 통하여 도덕적 존재로 성장한다. 이성의 엔텔레히가 자아실현을 한 결과로 인격이 된다. 이렇게 인간을 인격적 존재로, 각자 상이한 잠재능력을 가지고 태어나는 달란트의 존재로 보기 때문에, 이로부터 교육은 마치 정원사가 화초를 재배하듯이, 성장하는 어린이를 이미성 장한 어른이 자기의 관심에 따라서 일정하게 성장하도록 강요하면 안 되고, 성장발달의 설계도에 특수하게 감추어져 있는 어린이 자신의 고유한 잠재 가능성이 외부적 자극과 경험을 통하여 개성 있는 인격으로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활동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교육의 기능은 마치 땅에 떨어진 씨가 땅의 비옥한 정도에 따라서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처럼 (막 4:1-9), 어린이가 내적 성장질서에 따라서 무럭무럭 성장하도록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좋은 환경이란 어린이를 외부에서 어린이에게 가해지는 다양한 나쁜 영향으로부터 보호하고, 어린이 내부에서 싹트는 나쁜 성향을 미리미리 발견하여 싹트지 못하도록 억제하고 이미 싹튼 것은 제거해 주며, 어린이 내부에서 싹트는 좋은 성향은 칭찬하고 장려하며 잘 자라도록 촉진시켜 주는 일이다.

 

인간을 인격적 존재로 보는 교육자는 일종의 정원사와 같다. 정원사는 화초에 내재되어 있는 성장질서에 따라서 화초를 재배한다. 정원사의 역할은 화초가 자연의 질서대로 잘 자라도록 도와주는 것이지, 정원사의 의도에 따라 모양을 변형시키거나 성장을 촉진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시도는 있다. 그러나 이는 자연의 질서를 거슬러가는 것으로, 모든 비인간적 교육이 여기서 시작된다. 유기체적 관점에서 교육의 관심은 어린이의 최적적 자아실현에 있기 때문에, 교육의 출발점은 개개인의 유전적 조건과 환경의 최적적 상호작용을 도모하는 "인간학적 전제조건들의 비결정성 자체의 인식이기 때문에, 교육받는 어린이와 학생의 자아실현 자체가 교육의 목적이지, 다른 어떤 목적이 있을 수 없다. 인간의 얼굴이 개개인마다 다른 것처럼 자아실현에 대한 관심과 성취의 수준이 인간마다 너무나 다양하고 상이하기 때문에, 기르는 교육은 다양하고 풍부한 교육환경과 내용을 제공하여 주어서, 각자가 자신에 알맞은 교육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기르는 교육은 인간 개개인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달란트' (마 25:14 -30) 대로 자아를 실현하도록 장려하고 보호하며 억제할 뿐, 모든 형태의 인위적 조작을 거부한다. 여기서 우리는 교육의 세 번째 개념과 만난다 : 교육은 어린 인간을 그의 내적 성장질서에 따라서 조화롭게 성장하도록 돕는 활동이다.

교육은 여기서 인간 성장의 재배학으로 드러나며, 양육과 도야, 자발성과 잠재 가능성 같은 개념들이 교육학의 기본개념으로 강조된다. 교육의 이론이 아무리 완벽하다고 해도, 최종적으로 교육받는 어린이가 스스로 그러한 교육을 받아들여서 이를 통하여 자기 자신을 개발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교육하는 어른이 강제로 어린이를 그렇게 성장하도록 만들 수가 없기 때문에, 교육은 철저한 의미에 있어서 무능이다. 기르는 교육의 이해로부터 출발하는 모든 이론과 실천은 기성세대가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전통적 삶의 가치와 형식, 현재 기성세대가 보존하고 있는 사회문화적이고 정치경제적인 질서와 구조 안으로 성장세대를 인도하여 들이고 이것들을 계속하여 보존하고 발전시켜 가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부모와 교사를 포함하여 모든 기성세대에겐 자녀와 학생인 모든 성장세대의 교육이 너무나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들의 뜻에 따라서 교육을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않고, 다만 성장세대 개개인의 조화로운 자아실현을 도와주는 범위 안에서 함께 도모할 뿐이다. 그래서 기르는 교육의 이해에 따르면 사회질서와 사회현상은 다만 조화로운 자아실현을 억압하거나 방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존중되어야 한다. 인본주의, 자연주의, 박애주의 같은 교육사상들이 이러한 기르는 교육이해들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