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근대 17~19세기 기독교교육
17~19세기는 근대 자본주의가 성립되고, 계몽주의가 유럽을 휩쓸던 합리적 이성의 시대였다. 산업혁명은 종래의 지주, 소작, 귀족과 평민이라는 사회의 이원구조를 깨뜨렸다. 정적 사회가 동적 사회로 바뀐 셈이다. 1000년간 기독교교권 지배 아래 있던 교육환경, 사회경제 체제가 산업혁명으로 와해되자, 정적 사회에선 계급유지를 위해심부름 역을 하던 교육이, 동적 사회에선 출신성분이나 계급이 아니라 능력에 따라 대우받게 되자 중산층 계급이 형성되었다.
교육주도권이 세속사회로 넘겨져 교회와 연결된 전통학교, 부유층을 위한 사립학교, 자선학교 등 세 종류의 학교가 개설되었다. 교회수호를 위해 정통주의, 경건주의, 합리주의 교육 등 세 종류의 움직임이나타났다. 정통주의는 전통을 수호하고자 세속으로부터 자신을 폐쇄하고, 개혁자들의 전통고수에 몰두했다. 내용은 의인사상, 만인제사설, 성서제일주의, 교리문답 등으로 구성되었다. 방법은 교리문답을 기계적으로 암송하는 것을 채택했다. 스웨덴에서는 루터의 소교리문답을 암송해야 결혼이 허락될 정도로 형식화되고 율법주의로 흘렀다. 한편 재래학교를 교육의 장으로 삼았다. 그 형식은 옳았지만 내용이 폐쇄적이어서 신앙의 역동성을 살리지 못했다.
경건주의는 세속과 정면 대결하는 경향을 띄고, 교인의 내면생활을 강화시켜 강인한 교인을 만드는 데 목적을 두었다. 목적은 적극적으로 성서와 친밀해지고, 소극적으로 세상 악과 격리되며, 부패하지 않고, 뜨겁고, 정열적인 신앙으로 무장하는 것이었다. 내용은 성서, 회개운동, 회심운동 등이었다. 방법은 부흥운동이었다. 곧 종교의식, 교리, 관습, 제의보다 정의(情)적 내면경험과 그것에 연결된 경건 훈련을 강조함으로써 교회 안의 교회라는 형태를 띠었다. 제도는 내면경험을 강조하며, 소그룹을 조직하여 영적 신앙훈련을 실시했다.
스펜서(1635-1705)는 경건한 염원(1675)에서, 성서연구 강화, 평신도 전도운동, 실천적 그리스도교 전개, 종교 논쟁 폐지와 다른 신앙에 대한 제공, 성직자 교육에서 학문과 실제의 병행, 단순하고 실제적인 설교 등의 6가지 실천강령을 제시했다. 그의 제자 프랑케 (1663-1727) 학원은 빈민학교, 고아원, 귀족자녀들의 학교, 교사양성학교, 고등교육기관을 종합한 것으로 기숙사에서 공동생활하며, 목적을 영혼의 함양과 성서연구에 두었다. 모라비안 학파들은 가톨릭과 개신교 모두에게 버림받고 방랑길에 나섰는데, 진젠도르프(1700-1760)와 코메니우스(1592-1672)가 계승하여, 경건 교육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책임, 회심 등을 강조했다. 페스탈로치(1746-1852)는 소그룹의 역동성을 발견했다. 프뢰벨(1782-1852)과 허버트(1776-1841)는 경험에 기초한 교육방법을 고안하여 유치원 발- 전과 도덕교육에 기여하였다.
에라스뮈스, 루터, 칼빈 등의 계보에 서 있는 코메니우스는 100권의 논문을 한 권의 책으로 집대성한 「대교수학」에서 교리보다 신앙생활을 강조하고, 성서를 지식의 근본원칙으로 삼아, 인간 내면세계의 성숙과 더불어 사회공동체의 개혁을 추구했다. 코메니우스의 교육목적은 참 '지식'을 얻고, '덕'을 실천하며, 심오한 '경건'에 이르게 되는 하나님 형상의 회복과 인간구원이었다. 「범교육」에서 하나님의 형상회복과 자연세계의 질서 속에서 선하고 참되며 의로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인간구원을 강조했다. 자아를 위해서 이성, 언어, 행위에 대한 지성을, 이웃을 위해서 신중함, 절제, 인내, 정의 등의 덕성을, 하나님을 위해서 성령을 통한 경건을 교육내용으로 담았다. 하나님의 음성과 성령이 곧 교사였다. 코메니우스는 교육방법에서 겉치레가 아니라 철저하게, 물리적 강제력, 체벌보다 즐겁게, 애매모호하지 않고 삶에 응용할 수 있도록 확 살 하게, 난해하지 않고 쉽게, 논리뿐 아니라 감각을 자극하며 교육했다. 또한 실습을 강조했다. 귀로만 듣는 학습보다 눈으로 관찰하는 학습을 중요시했다. 코메니우스는 봄은 어머니학교(1-6세), 여름은 모국어학교(7-12세), 가을은 라틴어학교(13-18세), 겨울은 대학(19-24세)으로 구성했다.
한편 독실한 영국인 레익스(1736-1811)는 모라비안을 지향한 웨슬리에게 감명받고, 1780년 주일학교를 창시했다. 1785년에 25만명이던 주일학생 숫자가, 1801년에 30만 명, 1821년에 73만 명, 1831년에 125만 명, 1851년에 200만 명으로 늘어났다. 그는 주일학교의 교육목적을 도덕훈련과 경건 교육으로 비행 어린이를 선도하며 근면성을 고취하는 데 두었다. 또한 어린이들의 악덕은 불의한 사회환경에서 기인한다고 보았다. 타락한 아동이라도 훈육과 교육을 받으면 건강한 정서를 개발할 수 있다며 가능한 일찍 말씀의 씨앗을 뿌릴 것을 주장했다. 교육내용은 아기 돌보기, 알파벳, 철자법, 읽기, 쓰기, 셈하기, 예배와 성서연구, 교리문답, 도덕적 신앙적 교훈 등으로 구성했다. 교육방법은 일반 학교교육방법과 대동소이했다. 교육제도는 일반학교, 부유층학교, 자선학교 등으로 이루어지고, 오전 10시에 시작하여 정오에 해산한 후, 1시에 다시 수업을 시작했다. 그런 다음 예배를 드리고 요리문답을 했다. 5시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려보내면서 거리에서 배회하지 말고 곧장 귀가하도록 지도했다.
초기 주일학교는 급격한 사회변동으로 사회환경이 열악해지고, 그환경의 피해자들인 어린이들을 구해야 한다는 자선분위기가 팽배하여 큰 호응을 얻었다. 또한 하나님 말씀에 따라 교육함으로써 큰 힘을 얻었고, 교육에 대한 낙관적 분위기와 더불어 평신도 중심으로 전개한 점 등도 또 다른 성공요인이었다. 더 나아가 주일학교에 참석한 어린이들에 의해 부모까지 영향을 받아 신앙훈련이 되었다는 점도 큰 성과였다. 그리고 교육내용을 신앙뿐 아니라 쓰기, 읽기, 듣기, 시간엄수 등 더 넓게 확대함으로써 서민층의 주목을 끌었다. 레익스의 주일학교는 인간존엄성 회복 강화, 평신도 인력 활성화, 학부모의 종교훈련 동기유발, 간접적인 산업사회 역군양성, 자원봉사자 육성, 여아 등의 소외계층에 대한 교육기회 제공, 기독교교육의 사회문제 해결, 주일학교를 전국에 확산한 점 등이 공헌도이다. 하지만 주일학교는 영성직 인간화와 정의로운 평화의 사회를 형성하는 데는 미진했다. 이 운동은 자본가와 노동자가 분화하기 시작한 당시 정세 속에서 자본가의 입장에 편향되어 있었다. 그 결과 학습자들의 온전한 인식의 확대보다 무조건 순응과 근면성만을 가르치는 데그쳤다. 또한 시혜적인 자선을 베푼 나머지, 학습자들의 주체성을 고양하는 데는 미진했다.
한편 합리주의는 19세기 초에 세속 물결에 순응하면서 기독교를 보존하고 존속시키려는 목적으로 등장했다. 이성을 존중하고, 과학적합리성과 도덕적 합리성을 중요시했다. 진화론의 사고를 수용하고, 이 원리를 기준으로 신앙을 측정하여 교리를 수정하거나 재해석했다. 성서의 외형적 권위가 아닌 세속사회 속에 내재하는 이성, 과학성, 합리성, 진화성 등을 기준으로 재해석했다. 이러한 합리주의는 후일 전개되는 진보 기독교교육의 토대가 되었다. 합리주의 교육의 목적은 인간화였다. 내용은 성서의 재해석과 재정비였다. 방법은 합리적, 이성적, 과학적, 진화적인 데 있었다. 제도는 부쉬넬이 기초를 놓았다. 이 운동은 부쉬넬(1802-1876) 기독교 양육(1847)에서 시작되었다. 부쉬넬은 경건주의 영향을 받았지만 순간적이고 감정적인 회개에 집중하는 부흥회식 신앙운동의 오류를 지적했다. 어린이의 신앙발달은 순간적이고 감정적이며 일회적인 부흥회식 회개에서 오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끼게 해 주고 실천하는 데서 온다는 것이었다. 어린이는 양육에 의해 영적으로 얼마든지 새로워질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그 기초는 모라비안들의 경건주의 교육이었다. 경건주의 교육이 부흥운동과 종교교육운동 두 갈래로 발전된 셈이었다.
부쉬넬은 그리스도인 양육(1861)에서 헬레니즘 사고에서 기인한이원론을 극복하고, 보수주의가 말하는 전적 타락과 전적 무기력성을지양하며, 과도한 감정주의도 피할 뿐 아니라, 이성에만 치중하는 합리주의 신앙과 유니테리언의 인본주의 접근도 반대했다. 부쉬넬은 가정을 '은총의 성소', '작은 교회'로 인식했다. 따라서 양육의 직접적인 매체를 부모로 인식했다. 곧 부모가 사랑과 인내로 교육에 임할 때 자녀의 신앙은 자란다고 보았다. 심리학과 사회학을 신앙교육에 도입하고, 연령별 교육을 주장하며, 난해한 신학언어를 학습자가 알아들을 수 있는 용어로 전환하고, 강제로 가르칠 것이 아니라 아동이 신앙에 관심을 가질 때 기회를 포착하여 동기를 유발하며, 어떤 질문이든 열심히 경청하고 성의껏 답변하며, 신앙교육 중심은 예수로 하고, 부모의 삶 자체가 작은 그리스도가 되게 하며, 부모가 주체적으로 먼저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등의 다섯 가지 교육원리를 제시했다. 그는 자녀가 세례를 받도록 적극 안내하고, 이방인 어른이 부흥회에서 통곡하며 회개하듯 일시적이고 감정적 통회를 강요하지 말며, 자녀의 실수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심정으로 수정하고, 자연상태 그대로 놔두면 신앙이 자라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고, 연령에 맞게 기도를 가르쳐 하나님을 느끼고 영접하도록 안내하며, 선한 직업을 선택하고 올곧은 인격을 갖추도록 돕고, 선한 직업에 종사하게 하는 것 등을 모범된 부모의 특징으로 꼽았다. 부쉬넬은 자녀를 낙심시키지 않는 방법을 제시했다. 성급하고 신경질적인 감정으로 대하지 않기, 금지조항과 제한사항을 너무 많이 두지 않기, 독재자처럼 차갑게 다스리려 덤비지 않고, 지나친 완전주의를 극복하기, 극도로 깍듯한 예절과 예의를 갖추라고 윽박지르지 않기, 심한 벌을 너무 오랫동안 세우지 않고, 해내기 어려운 과제를 반드시 하라고 밀어붙이지 않기, 너무 성급하게 실수를 비난하거나 질책하지 않기, 너무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기, 너무 일찍 어른인격을 요청하지 않기, 꼬마는 정식 교회 구성원이 아니라거나, 성찬식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고 금하지 않기, 아이의 수준에 맞지 않는 도덕교육은 지양하기 등을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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