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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교육학

기독교교육학개론 - 기독교교육학의 역사(9)

by 곽까운낭만 2023. 6. 27.

3) 세속과 대면한 혼돈과 분열의 '타협' (1946-1969)

해방 후 주일학교 교육은 타성에 젖어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주일학교 교육에 대한 20~30년대의 거교회적 기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많은 기독교교육 학자들이 등장했으나 교회가 해야 할 선교사명을 명확히 제시하지 못한 채 미국교육을 다소 변형시키는 데 그쳤다. 교육자들은 교단 교육진흥에만 골몰한 채 범교단적 교육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힘쓰지 않았다. 연합기관도 과제해결보다 교단을 안배하는 인사에 관심을 두었다. 교회는 신사참배에 참가한 진영과 거부한 쪽으로 갈라졌다. 진보의 김재준과 보수의 박형룡의 논쟁으로 기장과 예장은 1953년 분열되고 말았다. 또한 신유은사와 방언과 같은 신비주의운동이 발생했다. 한편 진보의 기독교장로회는 하나님의 선교신학을 기치로 산업선교, 빈민가선교, 여차장 선교 등 억눌린 자를 위한 선교에 박차를 가했다. 1947년 1월 해체된 조선주일학교연합회가 부활되고, 성결교회도 참여했으며, 세계 통일공과를 번역했다. 1948년 연합회는 대한기독교교육협의회로 개칭되었다. 1954년, 채필근이 아동과 기독교」를 냈으며, 기독교교육협회가 재건되고, 부별 계단공과를 사용했다. 1959년 침례교는「주일학교 공과를 펴냈고, 31년 후 「예수꼴 공과」를 개발했다. 1960년 숭실대에 기독교교육학과가 설립되었다. 1961년, 이성화, 주선애, 김득렬, 정의숙, 문동환, 반피득, 장윤철 등이 기독교교육학회를 설립하고 잡지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3년 후, 보수교단의 김득룡, 명신홍, 차남진 등이 한국기독교교육연구회를 조직하여 외쿠메네의 진보학회와 복음주의의 보수학회가 병립되었다. 1962년 문동환은 한신대에 '기독교교육 연구소'를 개소했다. 1964년, 제5회 전국기독교교육대회가 열렸다. 1965년 장신대에 기독교교육학과가 설립되었다. 1966년 고신은 「생명의 양식」을 개발했다. 1967년 예장합동은 보수주의 신학을 바탕으로 「주일학교 계단공과를 펴냈다. 1969년 은준관 중심으로 감신대에 '기독교교육 연구소'가 개소되었다. 같은 해, 제6회 전국기독교교육대회가 열렸고, 성결교는 독자적으로 교재를 출간했다.

4) 주체적 기독교교육의 '자기 정체성 형성 및 발전기 (1970-2003)
1960년대 텔레비전, 가요, 동화 등의 일반문화는 발달하는 반면, 교회교육은 구태의연한 방법을 벗어나지 못해 학습자들이 흥미를 상실하고 있으므로 새시대에 부응하는 교육신학, 철학, 교과과정, 교육제도, 교재 등이 필요하다고 문동환, 은준관, 주선애 등이 지적했다. 기독교교육은 전문화를 시도하여 기독교교육학회가 결성되었다. 본격적인 기독교교육 개론서를 출판하고자 했다. 마침내 기독교교육학자들의 단행본이 출간되었다. 신학대학 등에 기독교교육 연구소 등이 설립되었다. 기독교교육 석사를 대거 배출하고, 기독교교육 전문이론서들을 번역했다. 나아가 주일학교 교육에 대한 역사적, 신학적 성찰을 하기 시작했다.
1970년 기독교성결교는 중생.성결.신유.재림의 사중복음을 내용으로 하는 「성경공부」를 펴내고, 19년 후 「성결한 삶을 발간했다. 1972년 예장통합은 신정통주의 신학을 바탕으로 계단공과 '성서와 '생활' 커리큘럼에 따라, 「성서와 생활」, 「그리스도와 생활」, 「교회와 생활」을 펴내고, 10년 후인 1981년 「말씀과 삶을, 20년 후인 2000년 「하나님의 나라 부르심과 응답을 개발했다. 감리교는 1980년 「하나님, 교회, 세계」를 발간했다. 한국기독교장로회는 1981년 하나님의 선교신학을 바탕으로 「하나님 • 세계 · 교회」를, 9년 후 함께 사는 세상」, 「함께 믿는 교회」, 「함께 세우는 나라」를, 12년 후에는 하나님의 약속과 우리의 희망을 개발했다.
1972년 감리교는 세속화, 과학화시대의 기독교교육 목적을 정립했다. 1972년 4개 교파가 '인간해방과 기독교교육의 과제'라는 주제로 정책협의회를 개최했다. 1973년 총신대에, 1977년에 고신대에 기독교교육학과가 설립되었다. 1978년 주선애 중심으로 장신대에 '기독교교육연구원'을 설립했다. 1980년 감신대에 이어, 1982년 한신대에 기독교교육학과가 설립되면서 연구와 교수기능을 활발히 전개하게 되었다. 2003년 현재 기독교교육 전공학과가 23개 대학에 설치되어 있고, 120여 명 학자가 한국기독교교육학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1973년, 예장통합은 한국인을 어떻게 성서 속의 하나님 형상대로 재형성할 것인가에 초점을 둔 성서와 생활」를 발간했다. 1973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주최로 '선교와 교육협의회' 가 모여 공동체를 파괴하는 악을 물질주의, 권위주의, 개인주의로 규정하고, 하나님의 뜻과 정의가 지배하는 나라가 되도록 교회교육은 사명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했다. 한편 예장통합 김형태의 신정통주의 입장에 근거한 기독교교육의 기초가 나왔다. 1976년 은준관의 교육신학」, 인간성 회복의 원리와 방법을 편 정웅섭의 기독교교육 개설, 보수주의 입장을 대변한 김득룡의 기독교교육학 원론」등 이론서가 출판되었다. 1977년 당시 장년공과 판매수는 8,100권, 어린이 공과 판매수는 25,300권에 달했다.
1978년 오인탁 책임하에 기독교교육 관련 1차 문헌이 발간되었다. 1980년, 인문사회과학과 대화를 시도한 정웅섭의 기독교교육의 이론과 실제가 출간되었다. 1982년 은준관의 교회 선교 교육이 나왔다. 1983년 오인탁 책임하에 기독교교육 관련 2차 문헌이 발간되었다. 1985년 민중의 주체성을 고찰한 문동환의 「아리랑고개의 교육이 나왔다. 1988년 총신대가 기독교교육연구소'를 설립했다. 2003년 현재 주요 신학대학들이 '기독교교육학과'와 '기독교교육연구소'를 두고 있다. 이래 한국기독교교육학회는 기독교교육 논총」을 매년 발간하여 2003년 9집을 출판했다. 주일학교 교육을 위한 실제 안내서가 출간되고 있다. 곧 기독교교육」, 「월간 고신」, 「교사의 벗」, 「어린이 교육」, 「교육교회」등 신앙교육 월간지가 정기적으로 발행되고 있다. 그리고 교육과정, 교육정책, 교육신학 등 교단별로 교회교육을 위한 지침서가 출간되었다. 또한 연합기관과 각 교단 또는 교육연구기관에서는 특색 있는 계단공과를 제작하여 배포했다.
에큐메니칼운동과 평신도 지도력이 성장했다. 곧 기독교교육에 대한 교회연합의 관심이 증대했으며, 평신도들의 성서학습 참여와 연구가 활발해졌고, 한국기독교장로회는 「해방공동체」를, 한국기독학생회는 오늘의 기독교와 해방의 실천」 등 자체적으로 성서교재를 개발했고, 민중교회를 중심한 실천 중심의 성서학습이 실험되었으며, 세계교회협의회의 신앙고백인 '정의·평화·창조세계의 보전' 등을 수용하여 사회 관심을 증대시켰다.
한국 기독교교육은 이제 그 방향에서 교회형성과 확장, 그리고 기독교의 전통전승이라는 신앙화 및 복음화와 함께 문화화와 역사화를 통해 세계를 섬겨야 하는 과제를 부여받고 있다. 내용에서 본문 중심의 교수방법과 생활 중심의 변증법적 상호접목도 숙제이다. 구조에서, 학교교수-형태의 일방성, 획일성, 추상성, 몰가치성, 전달위주 경향을 넘어 공동경험과 상호작용이 극대화된 소집단 학습방법을 활성화함으로써 신앙공동체 속에서 삶의 교류를 이루고, 내면화와 인격화를 함양해야 하는 것도 과업이다. 행정에서 기계적 조직이나 인간관계적 조직, 중앙집권, 수직, 명령, 폐쇄적 제도를 넘어 유기적 구조, 유연성, 종과 횡을 아우르는 포용성과 자발성을 요청받고 있다.